추억의 FM 라디오 10선

아무도 안 믿겠지만 나에게도 뺨따구가 뽀송뽀송했던 시절이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처음 들었던 FM 라디오 프로그램은 내게 충격 그 자체

주옥같은 팝송들의 향연

그리고 재미있는 DJ들의 진행과 그날그날의 색다른 이벤트

내 소년시절은 FM 라디오와 함께 성장했고 그로 말미암아 그때의 기억은 지금도 내게 많은 영향을 주곤 하는

며칠 전 오래된 CD를 꺼내어 듣다가 Chuck Mangione의 Give it all you got을 듣고

문득 25년전 그때의 풋풋했던 기억이 되살아나 이전에 즐겨듣던 FM라디오 프로그램 10개를 되새겨봤다

 

 

 

1. 김기덕의 2시의 데이트 (MBC FM 91.9 - PM 2:00~4:00)

   - 어눌하나 엉뚱한 DJ가 재기발랄하게 들려주는 나른한 오후의 휴식처

 

 

 

 

노래보다도 여러가지 다양한 이벤트로 청취자들을 즐겁게 해주었던 2시의 수면제어 프로그램

음악 위주의 방송을 지향하는 동시간대의 김광한의 팝스다이얼과 경쟁구도를 가짐으로써 두 프로를 가운데 두고 상당히 자주 주파수를 옮겨다녔던 기억이 나는

이 프로그램의 압권은 뭐니뭐니해도 당시 신세대 개그맨으로 통했던 박세민과 성우 윤소라가 함께 진행한 토요일 오후의 팝개그드라마

남녀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다양한 스토리사이에 적재적소 그와 맞는 음악을 집어넣음으로써 아주 재기발랄한 아이디어가 돋보였던

그 외에도 연말마다 그해 팝송 순위를 집계하여 방송해 준다거나 영어권 이외의 음악을 소개해 주는 등 음악 프로그램으로서의 공헌도 상당히 했던 프로그램

지금은 골든디스크를 진행하고 있는 김기덕 아저씨는 요새도 그 부드러운 목소리가 예전과 변함이 없다 정말 대단한

1973년부터 1997년까지 24년간 방송되어 동일 DJ 체계 프로그램 중 최장수 프로그램으로 남아있다

* 시그널 뮤직 : Emmanuelle - Danielle Licari

 

 

 

2. 황인용의 영팝스 (KBS 2FM 89.1 - PM 08:00~10:00)

   - 다양한 음악장르를 어우르는 관록있는 DJ의 Easy-Listening Pop Program  

   

 

 

늘 그렇듯 안녕하십니까 황인용입니다 로 시작하는 시그널은 늘 규칙적이었던

플렌저 기타의 스트록 부분이 끝날 즈음에 황인용의 영~팝스 하게 되면 어김없이 척크 맨지온의 플뤼겔 호른이 불을 뿜었다

동시간대 방송되던 MBC FM의 박원웅과 함께와 가장 치열한 저녁 청취자 쟁탈전을 벌였던

특히 다양한 팝 칼럼니스트를 시간대별로 초빙하여 많은 음악 이야기를 들려주어 나의 팝송 지식 함양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킹 크림슨, 에릭 클랩튼 등 브릿팝 아티스트들을 특히 많이 틀어주었던

황인용 아저씨는 요즘 파주 어드메서 음악카페를 운영하고 계시다던데 구경이나 함 하러 가보고 싶다

* 시그널 뮤직 : Give it all you got - Chuck Mangione

 

3. 별이 빛나는 밤에 (MBC 표준FM 95.9 - PM 10:00~12:00)

- 80-90년대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국내 최장수 프로그램

 

 

 

지금은 누가 진행하는지도 모를 국내 최장수 라디오 프로그램

내가 처음 들었을때는 FM도 아닌 AM이었고 서세원 아저씨가 진행을 했다

가장 처음 진행한 순으로 보면 이종환, 김기덕, 이수만 등 최고의 DJ들만이 이 프로그램을 거쳐갔고

이후에 이문세 아저씨가 진행을 맡으면서 당대 최고 인기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음악 프로그램이라 하기보다는 가지각색의 재밌는 구성으로 많은 청소년 청취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아직도 일요일마다 하던 공개방송에 나온 이경규 아저씨의 버럭개그는 배꼽을 잡기도 모자랐다

또 주병진 아저씨가 나오던 별밤극장도 매주 목요일 저녁을 기다리게 만드는 기대감을 부풀게 했던

* 시그널 뮤직 : Merci Cherie - Frank Pourcel

 

 

 

4. 이수만의 팝스투나잇 (MBC FM 91.9 - PM 07:00~09:00)

- 세련된 진행과 미래감각의 돋보이는 선곡

 

 

 

88년 정들었던 박원웅 아저씨가 FM 라디오국장으로 승진하면서 당시 미국 유학 후 돌아온 이수만 아저씨에게 바통을 넘겼던 프로그램

조용한 리듬으로 진행되었던 박원웅과 함께와는 달리 특유의 유머러스함과 센스있는 진행으로 상당히 세련되었던 팝송 프로그램으로 기억되는

미국에서 전자 세션을 공부하고 와서 그런지 뉴에이지 계통의 음악부터 컨템포러리, 퓨전재즈, 힙합 등 새로운 계열의 음악을 많이 소개했다 다만 헤비메탈을 비롯한 락음악의 비중이 좀 약했던 점은 아쉬웠던

약 3년여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내 사춘기 음악 정서를 참 많이도 다독여줬던 프로그램으로 기억되는

* 시그널 뮤직 : Personality - Najee

 

 

 

5. 김광한의 팝스다이얼 (KBS 2FM 89.1 - PM 02:00~04:00)

- 오후 한낮에 듣는 전문 팝 프로그램의 매끄러운 진행

 

 

 

김기덕 아저씨의 2시의 데이트가 오소독스한 재미를 가미한 버라이어티한 팝 프로그램이었다면

김광한 아저씨의 팝스 다이얼은 전문적인 음악 프로그램을 상당히 액티브한 진행으로 이끌어 갔던

청취자들의 리퀘스트를 바탕으로 폭넓은 팝송 지식을 갖춘 DJ가 여러 주변 이야기들을 곁들여가면서 수많은 팝송을 소개했다

김광한 아저씨는 팝송이 주류를 이루던 80년대 한때 유명세를 타 TV 코미디 프로그램 MC를 맡기도 했고

다만 음악의 인기도에 자신의 선호도를 많이 강조하여 조금 객관적이지 못한 팝송 순위를 발표하기도 했던 점은 아쉬운 부분이기도

* 시그널 뮤직 : Back to School - John & Vangelis

 

 

 

6. 0시의 데이트 (MBC FM 91.9 - AM 00:00~01:00)

- 국내 가요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산실

 

 

 

가요를 그닥 많이 듣지 않았던 소년시절이었기에 0시의 데이트는 나에겐 그리 선호프로그램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날 들었던 이정선 아저씨의 외로운 사람들을 듣고 나는 저명한 세계 팝음악과는 다른

또 하나의 음악세계가 내 귓전에서 발전하기 시작했고 그 중심은 바로 0시의 데이트였다

최명길 아줌마가 진행하다 정혜정 아나운서가 바통을 넘겨받으면서

본격적으로 그 당시 최고의 파워를 구가하던 동아기획 소속 가수들의 음악이 폭발적으로 쏟아졌다

김현식 들국화 유재하 봄여름가을겨울 오석준 어떤날 한영애 빛과소금 등등 수 많은 국내 정상급의 뮤지션들의 곡들과

마치 솜사탕같이 귀에서 녹아내리던 정혜정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정말 내 사춘기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던

* 시그널 뮤직 : April Love - Earl Klugh

 

 

 

7. 박원웅과 함께 (MBC FM 91.9 - PM 07:00~09:00) 

- 정통 음악 방송 DJ가 들려주는 보드라운 자장가

 

 

 

데이브 브루벡의 Take 5가 잔잔히 울리기 시작하면

역대 디스크자키 중 가장 감미로운 목소리가 조용히 멘트를 읊어 나가기 시작한다

조금이라도 볼륨을 줄이기라도 하면 아예 들리지도 않을 것 같던 수면제

책상에 엎드려서 조금 자고 싶을 땐 어김없이 사용하면 100% 효과를 보곤 했다

동시간대 황인용의 영팝스와 번갈아 들었던

2부 시작 시그널인 드뷔시의 아라베스크는 아직도 저녁 8시만 되면 그때마냥 귀에 울리곤 하는

* 시그널 뮤직 : Take 5 - Dave Brubeck

 

 

 

8.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 (MBC FM 91.9 - PM 10:00~12:00)

- 성인취향의 방송을 지향했던 라디오 공개방송의 시효

 

 

 

사실 동 시간대에 워낙 강한 별밤이 있었고 가요가 듣고 싶을때면 김미숙의 인기가요를 듣곤 했었다

이 아저씨 프로그램은 워낙에 말이 많고 음악도 도통 내 스탈이 아닌 깐소네나 샹송이 지렁이 발음으로 우루루

그래도 일욜마다 별밤 공개방송과 번갈아 듣던 공개방송은 참 재미있었다

별밤에 이경구옹이 있었다면 밤디에는 이택림 아저씨가 있었다

통기타 하나 들쳐메고 그 까다로운 이종환 아저씨를 농락하는 입담은 가히 천하일품이었던

내 기억에 이 프로그램은 음악적인 영향보단 초대손님들의 이야기와 이종환 아저씨 목소리 따라하기로만 기억이 남는

* 시그널 뮤직 : Adieu jolie Candy - Jean Francois Michael

 

 

 

9. 배철수의 음악캠프 (MBC FM 91.9 - PM 06:00~08:00)

- 80년대 명맥을 이어가는 명실상부한 장수 팝송 프로그램

 

 

 

 

지금도 어김없이 Satisfaction이 울리면 시니컬한 목소리로 비범한 멘트를 이어가는

한때 국내 최고 밴드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였던 그가

DJ와는 거리가 먼 목소리로 어중떠중 팝음악을 소개하고

독특한 진행에 청취자도 늘고 담당 PD에게 장가도 가고

이 프로그램 하나로 배철수 아저씨는 그야말로 일취월장했다

초반엔 오후 6시부터 7시까지 1시간만 진행하다 한경애의 영화음악이 폐지되면서

팝스투나잇이 8시~10시로 옮겨가고 음악캠프가 1시간 더 연장방송하게 되는 인기까지 구가하게 된

이제 거의 모든 라디오 프로그램이 가요 또는 버라이어티로 흘러가는 와중에 끝까지 팝송 프로그램으로 남아있는 열렬한 고집에 찬사를

* 시그널 뮤직 : Satisfaction - Vienna Symphonic Orchestra

 

 

 

10. 전영혁의 음악세계 (KBS 2FM 89.1 - AM 01:00~03:00)

- 매니아층을 형성한 실험적 음악청취 프로그램

 

 

 

 

어릴적 방학때였던가 잠 안 자고 우연히 들었던 성시완의 음악이 흐르는 밤에 라는 프로가 생각난다

무슨 이런 노래들이 있나 하며 몇분 듣다 라디오 끄고 바로 이부자리 속으로 들어가버렸던

이후 여러 장르의 음악을 섭렵하게 되면서 89.1에도 또하나의 괴짜가 새벽 1시부터 음악을 트는 걸 들을 수가 있었다

도통 이해 못할 음악들을 정말 무덤덤한 목소리로 소개하고

혹시나 음악 틀어놓고 자는건 아닐까 할 정도로 무지무지하게 길었던 노래들

허나 이 냥반을 통해 Jethro Tull과 Art of Noise를 알게 되었고

Yes의 기하학적인 사운드와 Pink Floyd의 실험정신을 이해하게 되었다

어려운 음악 듣는다고 결코 뭐가 있어보이는 건 아니나

많이 들으면 들을수록 음악은 새로운 귀가 열린다는 걸 가르쳐준 프로그램이었다

* 시그널 뮤직 : Elegy - Jethro Tull

                     Moments in love - Art of Noise

 

성시완의 음악이 흐르는 밤에 시그널 : Seduction - James Last

 

 

 

이상과 같이 살펴보면 알겠지만

주로 듣는 시간대가 오후 2시부터 담날 새벽 2시경 정도까지

어렸을땐 2시에 학교에서 하교하여 집에서 거의 음악만 들었기에 주로 위와 같은 프로그램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이외에도 김세원의 영화음악실, 임국희의 팝스퍼레이드, 강석의 음악캠프, 양희은의 가요응접실 등등

정말 많은 프로그램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공테이프가 모자라 영어회화테이프 밑 양옆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여 녹음을 해댔고

좋아하는 노래가 나와 신나게 REC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곡명을 알흠답게 소개해주는 김기덕 아저씨는 얄미움 그 자체였던

고교 진학 후 FM 라디오보다 친구들과 먹는 술 한잔이 좋아지고

DJ아저씨들의 부드러운 목소리보다 이쁜 언니들의 애교작살 목소리가 더 좋아지고나서

수년간 손때가 타 낡아진 Aiwa 카세트를 만질 일이 생기지 않았다

며칠 전 서재에 가 보니

그 옛날 내가 항상 마주앉던 책상 한켠에 그때처럼 가지런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초딩 3학년때 그토록 졸라 아버지의 지갑을 열게 만들었던 Aiwa 카세트

지금도 되나 싶어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고 라디오 전원을 켜니 희미하게 볼륨이 새어나온다

주파수를 이리저리 돌려 91.9에 맞추고 귀를 기울이니 간만에 Elton John의 Empty Garden이 흘러나오던

그렇게 멍하니 책상에 걸터앉아 맛있게 한 곡을 듣고 나니

주욱 그 자리에 앉아 예전마냥 라디오가 듣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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